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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엘비스가 개봉하고, 현재 해외에서는 극찬을 받으면서, 엘비스를 열광한 세대부터 현재의 세대까지 많은 이들이 다시 한번 엘비스 프레슬리에 대한 관심과 그의 음악 그의 삶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습니다. 엘비스 프레슬리의 프로필과 그의 인생 그리고 사망 이유와 비만 로큰롤에 관한 모든 것을 정리해보겠습니다
엘비스 프레슬리
미국의 가수이자 배우인 엘비스 프레슬리는 그야말로 혜성처럼 등장한 인물입니다. 1950년대 무시받고 경멸당하던 로큰롤의 음악을 세상으로 끄집어내서 당시 음악계를 완전히 뒤바꾼 최초의 아이돌이자 로큰롤의 제왕으로 불리고 있습니다
젊은 이들의 우상이자 50년대 대중문화의 상징으로 자리 잡으면서, 당시 언터테인먼트의 산업이 중장년층을 이루고 있지만 엘비스의 등장으로 10대로 옮겨지면서 현재까지도 이를 이어가며, 20세기 대중문화의 상징으로 자리 잡게 한 인물입니다
어린 시절
엘비스 프레슬리의 어린 시절은 기타를 배우면서 가수의 꿈을 키웠습니다. 음악을 교류하던 사람을 브루넷츠 형제이고 엘비스는 밴드나 가수 경연대회에 응모하지만 떨어진 적도 많으며, 트럭 운전수로 일을 하며 오디션에 꾸준히 참가했다고 합니다
엘비스 프레슬리 군대
미국에서는 당시 징병제를 시행하고 있어서 1958년에 입대하여 미 육군에서 복무를 했으며, 독일 민요를 개사해서 부리기도 했습니다. 향후 이 곡이 엘비스가 출연한 영화 G.I. 블루스에 삽입되기도 하며, 그가 입은 군복은 지금도 보관되어 팔라비 왕조 후손들이 미국에서 경매로 사서 소유 중이라고 합니다
로큰롤
엘비스 프레슬리 하면 로큰롤, 로큰롤 하면 엘비스 프레슬리인데, 파격적인 춤과 흑인들의 전유물인 로큰롤로 미국을 뒤흔들고 당시 보수적인 세대들에게는 혐오를 받았지만 젊은 이들에게 인기는 엄청났으며, 1973년에는 하와이 콘서트를 진행하면서 세계 최초 인공위성으로 생중계되기도 했습니다
영화
엘비스 프레슬리가 영화에도 많이 등장했는데, 다큐멘터리 영화를 제외해도 30여 편이나 되지만 대부분 히트곡들이 주목을 받아서 배우로서는 그리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지만 인기는 대단해서 영화를 계속 찍었다고 합니다
엘비스 프레슬리 비만
이런 엘비스 역시 나이가 들고 체중이 늘었으며, 약물 치료를 했지만 결국 효과를 보지 못했고 1977년 그의 몸무게가 무려 158kg이었다고 합니다. 결국 그해 8월 16일 자택의 욕조에서 쓰러진 채 발견되었고 42세의 젊은 나이에 심장마비로 요절했습니다
한편으로는 변기 위에서 바지를 반쯤 벗은 상태에서 약을 맞다가 사망했다는 소문이 돌았고 망가진 록스타라는 소리를 듣기도 했으며, 살을 빼기 위해서 약을 했다는 소문이 있습니다. 물론 근거 없는 루머로 생산되었지만 최근 새로운 사망설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엘비스 프레슬리 변비
사망 이후 엘비스를 부검한 결과 엄청난 양의 대변이 대장에서 검출되었는데, 감작스럽게 불어난 이유에 대한 타당성이 있으며, 엘비스에게 항문 이식 수술을 권유했으나, 자신의 신분상 이런 사실이 알려지면 후폭풍이 일어날 것 같아서 수술을 미루다 독성에 중독된 것이 아니냐는 말도 있습니다
혹은 약물 과다 복용으로 심장마비가 촉진되었을 수 있으며, 혹시나 엘비스가 약에 손을 대지 않도록 하는 처방이었지만, 이는 치사량에 미치지는 못하는 결과로 나왔지만 처방한 약의 성분에 코데인이 있는데, 이는 변비를 유발하는 것으로 설사 치료제로 과거에 코데인이 처방되기도 했습니다
이후 엘비스 부검을 하면서 약물 성분이 나왔지만 이것이 불법적인 약물도 알코올도 아니며, 결국 엘비스는 퇴폐적인 삶을 살지 않았음을 보여주었으며, 독실한 기독교 신자로 오히려 그의 삶은 투명하고 더욱 깨끗하다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엘비스 프레슬리 평가
엘비스에 대한 루머가 돌아다니자 그의 삶을 자세 들여다보니 화려하고 잘생긴 비주얼 그리고 로큰롤과 음악 그의 무대 위의 퍼포먼스가 거만한 스타를 떠올리게 하지만 실제로는 가난한 과거를 보냈고 꾸준히 기부도 했으며, 팬들에 대한 사랑과 선물하는 것을 좋아하는 아티스트였다고 합니다
그는 스스로 군대에 자발적으로 입대하여 모범적인 군생활을 했으며, 늘 존중과 모범, 겸손을 가졌다고 합니다. 이런 그의 바른 이미지가 결국 보수적인 미국 기성세대들에게 통하여 슈퍼스타가 되었고, 여전히 많은 이들이 그를 그리워하는 이유를 증명하는 것으로 되었습니다
엘비스 프레슬리 로큰롤의 전설
엘비스는 말 그대로 대중음악 최초의 록스타로 음악계 주류를 완전히 뒤바꾼 인물입니다. 물론 이전에도 로큰롤 장르를 탄생시키고 활동한 아티스트가 있지만, 이런 로큰롤을 세계적으로 인기 있게 끌어올린 인물이 바로 엘비스 프레슬리입니다
엘비스가 만든 비틀스
그는 미국을 넘어 전 세계 엘비스 키즈를 만들고 여전히 그의 앨범은 현재 활동하는 가수들보다 더 많은 판매고를 보이고 있다고 합니다. 더 나아가 비틀즈는 엘비스를 보면서 로클롤 뮤지션을 꿈을 키웠으며, 존 레논과 폴 매카트니 역시 엘비스 프레슬리를 뽑으며 뮤지션으로 영향을 준 인물이라고 언급했습니다
그리고 엘비스를 진접 만나는 그 순간의 경험과 감동을 이야기하기도 하며, 밥 딜런 역시 엘비스 프레슬리가 되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그래서인지 60년대 전설적인 록 스타들을 보면 엘비스의 영향을 받아 단순한 음악을 넘어 어떻게 하면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고 관심을 받는가를 잘 보여주고 있다는 평가와 함께 엘비스에 대한 경배가 되기도 했습니다
마이클 잭슨 이전의 엘비스
팝의 황제 마이클 잭슨은 음악 산업의 변동을 일으켜 음악의 시대를 열었는데, 그런 음악이 성공할 수 있던 이유도 엘비스가 다져놓은 다리가 있었다는 평이 있습니다. 물론 마이클 잭슨은 엘비스에게서 영향을 받은 것은 없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엘비스의 딸이 마이클 잭슨과 결혼했습니다( 2년 뒤 이혼했지만 친구로 지낸다고 합니다)
흑인 음악
인종 차별이 심한 당시에 엘비스가 흑인 음악으로 세계적인 사랑을 받았다는 것이 그를 위대하다고 평가하는 이유입니다. 일부 흑인들이 엘비스는 우리의 음악을 빼앗았다고 말하지만, 향후 리틀 리차드를 포함한 이들이 엘비스의 모든 것이 음악을 재평가하는 기회가 되었다고 언급했습니다
당시에 이런 사회적인 영향이 결국에는 누군가의 적으로 만들기도 하며 엘비스를 욕하기도 하며 여러 유명 아티스트들이 엘비스를 비난하기도 했습니다. (커트 코베인은 자신의 기타 케이스에 엘비스의 욕을 적어 놓기도 했습니다)
엘비스
엘비스 가족
비록 가난한 생활을 보냈지만 엘비스의 어머니는 엘비스를 아꼈으며, 결국 세상을 떠나게 되었고 과거 교도소에 있어서 아버지와의 관계는 서먹했지만 엘비스가 사망한 당시 아버지가 먼저 떠난 엘비스를 그리워하며 눈물을 흘렸다고 합니다
그렇게 엘비스가 세상을 떠나고 2년 뒤 아버지도 세상을 떠나 가족 모두가 하늘에서 다시 만나게 된 것인데, 당시에 엘비스가 복무 중이었을 때 어머니가 사망하여 엘비스 인생의 가장 큰 후회가 바로 그 순간이라고 합니다.
엘비스 생존설
하늘을 찌르는 인기로 엘비스 생존설도 돌았는데, 이는 지금도 여전히 돌아가고 있습니다. 사실 그의 행방이 묘연하기도 했고 그가 살이 너무 찌자 소속사는 이런 엘비스를 감추었다고 하며, 당시에 흐릿한 사진으로 인해서 무하마드 알리와 제시 잭슨 뒤에 엘비스 아니냐는 추정 사진들도 돌아다니기도 했습니다
물론 그가 도넛이나 햄버거를 좋아하기도 했고, 최초의 아이돌이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던 만큼 그리고 그의 인기만큼 이런 생존설이 안 나오는 것이 이상 할 수 있지만 지금도 심심하면 그의 생존설이 나오는 웃픈 상황이 흘러나오고 있습니다
엘비스 음악
사실 엘비스 음악이라고 말하기가 좀 어려운 것이 그의 명곡이 보통 많은 것이 아니라 그냥 엘비스 노래 틀면 '이 노래가 엘비스 노래구나!' 하는 음악들이 정말 많아서 젊은 세대들에게도 익숙한 곡들이 많을 것입니다. 사실 비틀즈 이전의 엘비스, 마이클 잭슨 이전의 엘비스 프레슬리라고 말하면 음악으로서 그는 모든 것을 말해주지 않나 생각해봅니다. 더 나아가 퀸 역시 엘비스를 위한 헌정곡을 쓰기도 했습니다
영화 엘비스
해외에서 극찬을 받고 엘비스를 연기한 오스틴 버틀러에 대한 극찬과 함께 엘비스 프레슬리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는데, 영화 엘비스 감상 전에 그의 삶을 다시 한번 돌아보면서 엘비스 더욱 몰입하여 감상하면 좋겠습니다. 영화 엘비스는 7월 13일 개봉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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